복잡한 교차로를 막 빠져나왔을 때 전화가 걸려온다.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이다.
“지금 어르신이 위독하신데요…….”
“아버지가요?”
“갑자기 상태가 안 좋으신데…….”
“언제부터요?”
“선생님, 지금 바로 오실 수 없죠? 연명치료 안 하시는 거죠?”
“아, 네.”
“기도 삽관도 안 하시는 거고요. 그렇게 알겠습니다.”
신호에 걸려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내가 지금 뭐 한 거지?
그의 아버지는 임종기의 연명치료를 거부했고 자식들의 의견도 같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운전하고 있었고, 교차로 신호를 지켜야 했고, 거래처 약속시간에 늦었고, 그래서 바빴고, 여기저기 업무상 카톡이 계속 울려 대는 이런 상황에서……. 나 지금 뭘 한 거지? 다시 요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거래처에 다 도착했다. 주차를 하면서 형제들에게 문자를 돌린다.
“아버지가 위독하신 것 같은데 누구 갈 수 있는 사람?”
뭐 이런 문자리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래처로 들어간다. 나를 기다렸던 직원이 반갑게 달려온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나는 그 이후가 궁금하다.
“그분 아버님은 바로 돌아가셨어요. 장례식에 가서 들은 얘기예요.”
-알라딘 eBook <그렇게 죽지 않는다> (홍영아 지음) 중에서
어짜피 실물책이나 전자책 읽는 것 자체가 싫다고 하는 분들도 강력하게 그래도 올해 딱 하나 읽어두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책을 추천하라면 전 두말없이 이 책을 강권합니다.
작년말에 연차보너스 받은 걸로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호하는 형태의 저가 생각해둔 책을 새해선물로 보내드렸었는데 이 책을 먼저 알게 되었다면 이 책을 지인에게 뿌렸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90년대 우리가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 방송에 비인간적인 작태를 행한 방송쟁이(작가님표현)가 나중에 자기가 싼 똥이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나비효과를 가져온걸 다시 수습할려는 책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참 용감하다고 봅니다.
“60대 초반의 환자는 오래전 허리를 다쳤고 실직했다. 우울한 남자는 집에서 습관적으로 혼자 술을 마셨고 그러다가 쓰러졌다. 퇴근한 아내는 남편을 응급실로 옮겼다. 남편의 뇌출혈 상태는 심각했다. 빨리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의사가 수술을 권하지 않는다. 간이 안 좋아서 이대로 수술을 했다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뇌출혈로 인해 자발적 호흡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의사는 아내에게 인공호흡을 위한 기도 삽관을 설명한다.
“기도에 관을 삽입해 인공적으로 산소를 넣어 주는 거예요. 그러면 생명은 유지돼요. 그 상태로 중환자실에 가실 건데, 기도 삽관을 하면 뺄 수 없어요. 정상 호흡 상태에서는 관을 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의사는 분명히 말했고 쉽게 설명한다고 했지만 아내는 이 말의 속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기도에 뭔가를 넣어서 인공적으로 숨을 쉬게 해 준다는 말인 것 같은데, 생명이 유지된다는 것이 회복된다는 걸까, 반송장이 된다는 걸까, 중환자실에 가면 낫는다는 걸까, 중환자가 된다는 걸까. 기도 삽관을 하면 뺄 수 없다는 건 무슨 말일까. 빼면 죽는데 왜 뺄 수 없다는 말을 내게 하는 거지? 정상 호흡 상태라면 좋은 거 아닌가? 어쨌든 정상 호흡이라는 말에 아내는 남편의 목에 관을 삽입하고 인공호흡으로 목숨을 부지하기로 한다. 중환자실로 들어간 남편은 형제들이 면회를 와도 알아보지 못한다. 의식은 없고 호흡만 있다.
며칠이 지나고 상태는 그대로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편하게 있으라며 울먹이던 형제들은 이제 의사에게 항의 비슷한 토로를 늘어놓는다.
“저 상태로 계속 계시는 거예요?”
하루 35만 원의 중환자실 입원비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그러니 아내가 의사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응급실에서 의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면 어땠을까.
“기도에 관을 삽입해 인공적으로 산소를 넣어 주기 시작하면 살긴 하는데 중환자실에서 그런 상태로 몇 달이고 숨이 안 끊어지고 살 수 있어요. 기도에 관을 넣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마취제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고 그럼 계속 자고 있는 상태가 이어지는 거예요. 면회는 하루에 두 번밖에 안 되고요. 입원비가 하루 35만 원이고, 한 달을 누워 있으면 천만 원을 내셔야 합니다. 물론 기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그 상태로 몇 달이고 사실 수 있어요. 중간 정산을 하실 때 돈이 없다고 사정을 하시면서 이 관을 뽑고 퇴원시켜 달라고 하셔도 저희는 그럴 수 없어요. 그랬다가는 이분이 바로 돌아가실 거고 저희가 쇠고랑을 차거든요. 다음 선택지는 수술인데, 지금 수술실에 들어가시면 최선을 다해 살려 보겠지만 간 상태가 나빠서 마취에서 못 깨어나시고 돌아가실 수 있어요. 마지막 선택지는 저대로 그냥 두시는 겁니다. 그럼 아마 몇 시간 후 임종하실 거예요. 그런데 임종 때까지 여기에 두실 순 없어요. 여긴 응급실이니까요. 저희 병원에는 임종실이 없어요. 그러니 1인실로 가시겠어요? 거기서 임종 때까지 입원하시는 방법도 있어요. 가까운 가족분들과 인사하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마지막 선택지를 이야기하는 의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는 사람이지, 죽어 가는 환자를 방치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설명이 이렇게 이뤄졌다고 한들 그 자리에서 남편의 죽음을 방치하거나 죽을 것이 뻔한 것을 알고도 수술해 달라고 할 배포 있는 아내는 없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그렇게 죽지 않는다> (홍영아 지음) 중에서
누구나 이런 상황이 곧 닥칠 수 있지요. 마음에 준비도 필요하지만 각계 전문가들에게 발로 뛰고 취재하고 경험을 한 작가의 지인들이 제발 이런 내용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되기를 바란 부분들을 인터뷰해서 엮은 책입니다.
작가는 그러고도 유튭에 책에 대한 내용의 거의 50프로에 가까운 내용을 유튭에 동영상으로 보여줍니다. 책에 없는 동영상의 내용도 참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김광석 이야기와 유골함 사장님 이야기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게 되네요. 이땅에 꼭 필요한 누구나 꼭 읽어봄직한 책입니다.
PS : 삶의 지혜 급 책이라 팁과강좌란에 올라가서 더 많은 분들이 봤으면 했지만 도서 소개라 사용기로 올립니다.
저도 강력 추천합니다.
밀리의 서재에도 있어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라고 잘읽어보시고 작성고려해보십시오 책은못읽어봤지만 작성자님글로 미루어짐작이되네요
원래 소개글에는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이라는 책이었습니다.
https://g.co/kgs/XeoBQZ
미국의 젊은 여자 장례지도사가 쓴 책입니다. 문화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요것도 함 읽어볼 만 합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혹은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라고 시작해서 저 책의 내용을 꼭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가족 전체를 살리는길이 될수도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수십년간 그런 가정들 십수군데(때로는 정신차리라고 욕도 섞어가며)는 저런 조언들을 해주셨는데 모든 가족들이 나중에 감사하다고 찾아왔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복입고 산소호흡기 꼽은 모습으로 거액을 날리며 계시는것보다 다만 몇일이라도 일상복입고 손주들 안아보다 돌아가시는게 가족들이나 고인에게 긍정적인 모습이 될것입니다.
죽음의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갑작스런 죽음 이후에 무속인들이나 종교인들이 꼬이면 천도재다 뭐다 해서 남은 가족들의 슬픔을 미끼로 돈뜯어 가는 무리들도 문제죠.
퇴근 후 읽어봐야겠네요. @@
혼자 볼까 전자책 살까 했는데 근처 서점에 들러 종이책으로 사야겠습니다. 와이프도 같이 봐야 할 거 같아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아프고 힘들어했는데 그래도 죽지 못하니 계속 살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오랫동안 계속 돌봐오던 가족 역시 진이 빠지고 힘들어했구요.
그래서 느끼는거지만..
편안하게 죽을 권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단지 견뎌야 할 시련이라기보다 경험으로 삼을 수 있는 이벤트로서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네요.
유투브 영상 들으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는군요.